허리를 구원한다던 전동 스탠딩 데스크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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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 3년 차가 되니 논문보다 허리가 먼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새벽까지 의자에 붙어 있다 보니 엉덩이 뼈가 의자 몰드를 기억한다는 농담까지 들었죠. 그래서 이번 학기엔 “높이 조절 책상만큼은 꼭 들여놓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문제는 가격이었습니다. 국내 브랜드의 전동 스탠딩 데스크는 기본이 80만 원부터 시작했고, 모터 두 개짜리 모델로 올라가면 120만 원대에 육박했습니다. 연구비로 충당하기엔 눈치가 보이고, 제 통장 사정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새벽, 발표 영상 렌더 시간을 견디며 유튜브를 틀어 놓았는데 영상 앞에 ‘창고직영 최대 65% 할인, 공장가 전동 데스크’라는 광고가 떴습니다. 썸네일엔 깔끔한 화이트 톤 책상이 모터 소리 없이 오르내렸고, 가격은 389,000원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링크를 눌러 보니 ‘데스킹팩토리’라는 쇼핑몰이었는데, 메인 배너에 “공장 직판이라 중간 마진 0원”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더군요. 회원가입 시 3만 원 쿠폰까지 준다길래, 저는 얼결에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적고 가입 버튼을 눌렀습니다.

 첫 번째 적신호는 회원가입 직후 날아온 문자였습니다. “서OO님, 데스킹팩토리 회원 가입을 축하합니다. 오늘 자정 전 결제 시 추가 5% 할인!” 같은 문구였는데, 이벤트 소식 치고는 조급함이 과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상품 페이지를 둘러보니 사진과 스펙표가 제법 그럴듯했습니다. 모터는 독일산, 하중 120kg, 무상 A/S 5년. 리뷰 탭을 열었더니 별점 다섯 개가 줄지어 있었고, “조립 쉬워요” “모터 소음 거의 없어요” 같은 짧은 댓글이 복붙처럼 이어졌습니다.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어차피 국내 리뷰 문화가 짧은 문장 위주라는 생각에 스크롤을 더 내렸습니다.

 두 번째 적신호는 결제 단계에서 터졌습니다. 카드 결제를 클릭했는데 PG사 로고가 보이지 않았고, ‘데스킹페이’라는 생소한 결제창이 새 탭으로 뜨더군요. 거기엔 “현재 카드 모듈 점검 중, 무통장 입금 시 7% 즉시 할인”이라는 안내가 번쩍였습니다. 7%면 거의 배송비를 상쇄할 정도라 솔깃했지만, 수취인 계좌 명의가 회사명이 아닌 개인 이름이라 꺼림칙했습니다. “사업자 통장이 아닌가요?”라고 1:1 채팅에 물어보니, 상담원은 “법인 계좌 전환 절차 중”이라는 답을 복사 붙여넣기한 듯 빠르게 보내왔습니다.

 결정을 미루려던 찰나, 사이트 상단에 팝업이 떠서 “260번째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라며 실시간 알림이 반짝였습니다. 주문 번호가 25초마다 증가했는데, 숫자 패턴이 규칙적이라 오히려 자동 스크립트 같았습니다. 의심은 커졌지만 허리 통증도 만만치 않아 마음이 계속 기우뚱했죠. 그래서 저는 작은 검증이라도 해 보자 싶어 이미지를 하나 저장한 뒤 구글 이미지 검색을 돌렸습니다. 검색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 사진은 한 해외 인테리어 블로그에서 2022년에 리뷰용으로 올렸던 촬영 컷이었습니다. 색보정 값과 그림자 방향까지 동일했습니다.

 설마 싶어 후기를 다시 살펴봤습니다. 리뷰어 닉네임이 전부 ‘dkf***’ ‘dkf****’처럼 비슷했고, 작성 날짜는 모두 지난주 목요일. 이쯤 되니 냉기가 등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마지막으로 WHOIS 조회를 해 봤더니, 도메인 등록일이 달랑 18일 전. 서버는 동남아 어느 호스팅 업체에 있었고, 사업자 정보 페이지에 적힌 사업자등록번호는 조회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야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뒤통수를 때렸습니다.

 혹시 놓친 것이 있을까 싶어 먹튀위크 에도 검색을 해 봤습니다. “전동책상 공장직영 할인”이라는 키워드로 이미 신고글이 세 건 올라와 있더군요. 피해자 중 한 분이 “모터가 불량이라 교환 요청했더니 사이트가 증발했다”는 후기와 함께 결제 계좌를 공개했는데, 제가 본 계좌와 은행 지점이 같았습니다. 이 정보 하나로 미련은 싹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타이머는 여전히 돌아가고, 사이트는 “재고 4개”라며 구매를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결제 포기를 넘어, 뭔가 행정적 조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화면을 캡처하고, 사이트 소스코드에서 결제 스크립트 URL을 찾아 이미지와 함께 저장했습니다. 그리고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위조 신고’와 통신판매중개사업자 신고 페이지에 각각 파일을 첨부해 신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제출을 마치니 오후 네 시가 넘었는데, 허리 통증보다 눈 피로가 더 심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11시, 메일함에 ‘해당 판매처는 검증 불가로 노출 중단 조치하였습니다’라는 답을 받았고, 다음 날엔 문제가 된 도메인이 아예 접속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놓이자 오히려 진짜 스탠딩 데스크가 더 간절해졌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중고나라, 당근마켓, 그리고 오픈마켓 정품 리퍼 카테고리를 차근차근 비교했습니다. 결국 국내 브랜드 리퍼 제품을 70만 원에 구매했는데, 배송은 늦었어도 정품 보증서와 카드 영수증이 깔끔하게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책상이 사뿐히 올라갔다 내려오는 모습을 보니, 그때 포기하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일로 얻은 교훈을 네 줄로 정리해 봤습니다.

  1. 시세 대비 40% 이상 싸면 스펙보다 출처부터 확인합니다.
  2. 회원가입 직후 타이머 압박이 뜨면 서둘러 ‘닫기’ 버튼부터 누릅니다.
  3. 입금 계좌가 개인 명의이면 법인 전환 핑계를 듣더라도 즉시 의심합니다.
  4. 먹튀위크의 집단 데이터는 불안을 단숨에 확신으로 바꿔 줍니다.

 연구에서 데이터 전처리 한 줄이 결과를 뒤바꾸듯, 온라인 쇼핑에서도 5분짜리 검증이 통장 잔액을 지켜 줍니다. 허리 건강을 살피기 위한 투자가 자칫 생활비를 날릴 뻔했던 경험 덕분에, 저는 앞으로도 ‘할인율’보다 ‘사업자 정보’부터 클릭할 것입니다. 그리고 값싼 가격표 뒤에 숨은 덫을 발견하면, 먹튀위크에 작은 단서를 보태 또 다른 누군가의 허리를 지켜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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